세종 30년 병사들의 훈련장에서 이재수의 봉기(1901년), 4.3(1948년)항쟁의 시발점의 한을 품은 자리
제주의 관문인 제주시 중심가에는 제주가 걸어온 숱한 역사를 간직한 채 묵묵히 서 있는 제주관덕정이 있는데 이 건물은 1448년 이조 세종30년 목사 신숙청이 군사의 훈련을 위하여 세운 것으로서, 편액은 안평대군의 글씨로 알려져 있으며 천정에는 상산사호등(商山四皓等) 7폭의 벽화가 걸려있다.
관덕정은 제주시내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사적지로, 이 정(亭)은 조선시대 건물로서 세종 30년 안무사(按無使) 신숙청이 병사의 훈련과 무예수련장으로 사용키 위하여 창건하였다. 창건한 후에 이 곳의 용도를 보면 연무를 지휘하고 사열하는 곳이었을뿐만 아니라 관민이 함께 공사를 의논하거나 잔치를 베푸는 곳이기도 했다. 때로는 죄인을 다스리는 형장으로 쓰여졌다. 관덕정에서 관덕이란 이름은 '사자소이 관성덕야(射者所以 觀盛德也)'라하여 '평소에 마음을 바르게 하고 훌륭한 덕을 닦는다.'는 뜻이며 문무의 올바른 정신을 본받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탐라지>에 의하면 세종 30년인 1448년에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창건 되었으며 이후 여러차례 개건과 중수를 거쳤다. 현재의 건물은 그 수법으로보아 17세기 전후의 것으로 추정된다. 관덕정 건물이 앉아 있는 방향은 동쪽이며, 궂는 이중기단위에 전면 5칸, 측면4칸으로 단층 8작 겹처마집이다. 또한 이익공(二翼工) 집으로서 처마가 길었던 것이 특징이며 사방은 개방한 정자양식이다. 관덕정의 편액은 세종대왕의 셋째아들인 안평대군(李瑢)의 글씨이다. 그래서 사적가치가 더높은 곳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정내 천정의 '탐라형상' 과 '호남 제일정' 은 방어사 김승록, 박선양의 편액이다. 그리고 관덕정의 진수라고 할수 있는 7폭의 벽회가 대량밑의 장설(長舌)양면과 그아래에 그려져 있다고 한다. 그림의 내용은 두보의 취과양주귤만헌(醉過楊州橘滿軒), 십장생도(十長生圖), 상산사호(商山四浩) , 적벽대첩도(赤壁大捷圖), 대수렵도(大狩獵圖), 진중서성탄금도(陳中西城單琴圖), 홍문연(鴻門宴)등이다. 보물 제 322호로도 지정보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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