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설촌 여사를 보면 삼벌초가 애월읍 고성리 항파두리에 주둔할 당시 토성을 쌓으면서 주민들을 동원하였다는 문헌에 의하여 원종 12년에 설촌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마을 이름은 엄장포 또는 엄장이라고 하였다. 이후 조선 명종 14년 강령목사가 부임하면서 바닷물로 햇볕을 이용하여 소금을 제조하는 방법을 가르쳐 소금을 생산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생업의 터전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곳을 소금빌레라고 부르고 있으며, 소금밭의 길이는 해안을 따라 300m정도이고, 폭은 50m, 넓이는 약 1,500평에 이른다. 염기는 봄, 여름, 가을이 적기였으며, 생산된 소금은 색소등 품질이 뛰어나 굵고 넓적한 천일염으로서 중산간 주민들과 농산물을 교환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소금밭은 이 마을 주민들의 생업이었으나, 점차 의식구조의 변천과 생업수단의 변화로 1950년대에 이르러 소금밭으로서의 기능을 잃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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