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지만, 예전에는 3 -4가구가 살았었으며, 예전에 사람이 살았던 우물 흔적과 가옥의 형태가 남아 있다. 0.160㎡의 면적에 섬 중앙은 평지를 이루고있으며, 제주에 있는 무인도중에 가장 큰 섬이다. 고산리 자구내 포구 앞에 오롯이들어 앉은 이 섬은 본섬이 죽도와 지실이설, 와도등 세개의 큼선과 작은 부속섬, 간출암으로 이루어져있다.
전설에의하면 , 옛날 송나라 복주 사람 호종단이 장차 중국에 대항할 큰 인물이 태어날 형국을 지고 있다고 하여 온섬의 지맥과 수맥을 모조리 끊고 다녔다 한다. 그런데 호종단이 일을 마치고 고산 앞바다로 돌아가던중, 그의 배가 이섬앞에 이르렀을때 어디선지 한마리 날쌘매가 날아와서 돗대위에 앉더니 별안간 돌풍을 일으켜 배를 침몰시키고 말았다. 바로 한라산 수호신이 매로 화하여 지맥을 끊고 가는 호종단을 죽여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호종단이 돌아가는 것을 막았다하여 대섬과 지실이섬을 합하여 차귀도란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포구에서 쾌속정을 빌려 타고 섬 주변을 돌아 볼 수 있으며, 섬주변의 갯바위에서는 잡어들이 잘 낚이며 벵에돔이 씨알 굵게 낚여 시원한 갯바위 낚시를 즐길 수 있다. 낚시 준비를 갖추지 못한 사람들도 어선을 임대해 바다 낚시를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이곳은 사시사철 벵에돔이 노릴수 있는 전천후 포인트로 고등어와 전갱이등 회유성 어종이 많이 낚여 초보자들에도 인기가 있다.
차귀도의 유래
이 차귀도의 이름의 유래를 찾으려면 먼 옛날인 중국의 진시황제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진시황제는 자신을 위협할만한 인물이 등장해 자신이 누리는 권세를 빼앗을까봐 몹기 꺼려하였다.
옛부터 제주도는 한라산의 정기가 곳곳에 뻗어 있어 앞으로 장수가 많이 태어날 혈맥을 갖고 있었는데, 이러한 사실을 미리 알고 두려워한 중국의 진시황제가 지관인 호종단을 보내어 제주도의 혈맥과 물맥을 끊도록 했다. 호종달은 지술에 뛰어난 사람이었는데, 진시황의 명을 받아 제주도에 온 호종단이 한라산 백록담에 올라가서 쇠판을 딱 붙여놓고 혈맥을 찾아보니 과연 제주도는 혈맥이 뛰어나 머리가 뛰어나고 힘이 센 장군이 태어날 곳이었다. 그는 제주도 곳곳을 돌아 다니며 혈맥을 밟아 끊었다.
여느때와 같이 혈맥과 물맥을 끊기 위해 길을 나선 호종단은 한 마을에 이르러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마을 이름을 물었다. “이 마을이름이 종달이라고 하자 호종단은 자신의 이름과 비슷하여 괘심하다하며 마을의 샘인 ‘물징거’의 혈을 끊어버렸다. 이 물징거를 시작으로 하나씩 물혈을 끊어버렸다. 그런데 호종단이 서귀포 서홍리 지장샘에 다다르기 전에 이상한 일이 생겼다.
한 백발 노인이 물그릇을 들고 달려와 밭을 갈고 있는 농부에게 "이것을 아무도 몰래 감춰두고, 혹시 누가 와서 찾아도 모르는 척 하시오." 하고 말한뒤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여긴 농부는 물그릇을 얼른 숨겼다. 그 이후 서귀포 서홍리에 다다른 호종단은 이곳의 물맥을 끊기 위해 지장샘(샘물)을 찾아 한참 헤맸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그냥 돌아갔다. 이 때 호종단이 혈을 막지 못해 지금도 서홍리에는 지장샘이 솟아나오고 있다고 한다.
호종단이 제주 섬을 돌아다니며 이렇게 산천의 혈맥들을 끊어버렸기 때문에 샘물도 귀하고 인물도 귀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때 한라산신은 콸콸 솟아나던 샘물이 마르고 혈맥을 끊긴 땅들이 울부짖는 신음소리를 듣고 호종단을 괘씸하게 여겨 벌을 내려야겠다고 다짐했다. 호종단은 중국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고산리 포구 앞바다에 돛을 단 배를 타고 항해를 시작하였다. 그때 큰 매가 하늘을 힘차게 날더니 회오리바람이 순식간에 호종단의 돛배를 덮쳤고, 광풍에 걸려든 배는 팽이처럼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채만한 삼각파도가 광풍과 합세하여 배를 번쩍 들어 고산리포구 앞 바다에 있는 섬의 암벽에 내팽개쳐져 배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한라산신이 매로 변하여 호종단을 혼내었던 것이다. 호종단이 돌아가는 것을 차단했다하여 차귀도라 부르게 되었고 이곳에 차귀당을 세워 한라산신의 영렬한 호국을 숭경하는 제를 해마다 지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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