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서쪽, 한경면 고산리 해안에서 바다로 돌출한 해발 77m의 수월봉은 넓다란 평야를 끼고 있는 작은 봉우리 인데, 맑은 날 앞바다를 검붉게 물들이면서 떨어지는 낙조의 모습이 매우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런지 특히 한해를 마무리하는 연말 오후가 되면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기도 한데, 특히 바다쪽 절벽은 깎아지른 듯한 단애를 형성하여 북쪽 약 2km까지 이어져 있는데, '엉알'이라고 불리는 이 곳에는 바위벼랑 곳곳에서 샘물이 솟아나서 약수터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며, "힐링"테마가 부각되면서 수월봉 지질트레킹코스 등이 인기를 얻고 있는 곳이다.
또한 수월봉은 기우제를 지내는 곳으로서 상봉에는 6각정인 수월정이 세워져있고, 이 수월정에 올라서보면 눈앞에 차귀도가 한눈에 들어오고, 고산봉과 고산들, 당산봉 등의 넓은 평야에는 마을이 바둑판 위에 바둑알처럼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시원하면서도 아름다운 한라산의 모습이 이국적인 정서를 자아내는 곳으로, 성산일출봉의 일출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이 곳의 광경은 수월이와 녹고 남매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녹아 있어 더욱더 아름다운지도 모르겠다.
약 350년 전 고산리에는 수월이라 부르는 처녀와 녹고라고 하는 총각인 두 남매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의좋게 살고 있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어 살림은 어려웠지만 단란하기만 했던 가정이었다. 그런데 어느 해 봄. 뜻밖에 어머니는 몹쓸 병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었는데, 날이 갈수록 점점 병세는 위독하여 가기만 하였다. 좋다는 약은 마다않고 다 써보았으나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하여 수월이와 녹고는 그저 얼굴만 마주 보면서 눈물만 흘릴뿐이었다.
그러던 중 어느날, 한 스님이 지나다가 이들 남매의 사연을 듣고 가엾게 여긴 스님은 백 가지의 약초를 가르쳐 주면서 그것을 달여 먹이면 어머니의 병이 나을 것이라고 하였다. 수월이와 녹고는 그 날부터 스님이 가르쳐 준 백가지의 약초를 캐기 위해 이곳 저곳으로 애써 돌아다녔다. 그러나, 아흔 아홉가지의 약초를 캐어 가지고 돌아올 수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마지막 단 한가지의 약초인 '오갈피'만은 구하지 못하였다. 그 약초는 높은 바위나 산비탈 같은 곳에 있는 것이라던 스님의 말을 들은 남매는 이튿날 다시 곳곳을 누비며 마을 앞 바닷가 동산 쪽으로 가 보았다. 마침내 수월봉에 있는 절벽의 중간쯤에 '오갈피'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들은 위태로운 것도 무서운 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이 절벽을 내려가 캐어 오기로 하였는데 수월이는 녹고의 한쪽 손을 잡고 한 발자국씩 절벽밑으로 내려가기로 하였다. 드디어 수월이는 그 ‘오가피’약초를 캐어 녹고에게 건네주었는데, 녹고도 그 약초를 받는 순간 기쁨에 넘쳐 잡았던 수월이의 손을 그만 놓쳐 버린 것이었다. 여지없이 그 험한 절벽으로 굴러 떨어진 수월이는 결국 못숨을 잏게 되었고 . 녹고는 누이를 잃은 슬픔으로 열이레동안 슬피 울었다.
녹고의 그 슬픈 눈물은 바위틈으로 들어가 지금의 ‘약수 녹고물’이 되었고 그곳은 그 동산은 그후부터 ‘녹고물 오름’ 혹은 ‘수월봉’이라고 불렀다. 지금 이 수월봉 정상에는 예전에 기우제를 지냈다는 수월정이 있고 바다로 닿은 절벽에는 여전히 녹고물이 흐르고 있다. 이 수월봉에서 캐낸 약초인 오가피는 전국에 분포되지만 섬오가피는 주로 해변 산지나 한라산 계곡이나 숲속에 드물게 자라나 제주도의 특산물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