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혈은 한반도에서 가장 오랜 유적으로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34호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4,300여년전 제주도의 개벽시조(開闢始祖)이신 삼을나 삼신인 [三神人 : 고을나(髙乙那). 양을나(良乙那)①. 부을나(夫乙那)]이 이곳에서 동시에 태어나 수렵생활을 하다가 우마(牛馬)와 오곡의 종자를 가지고 온 벽랑국(碧浪國) 삼공주를 맞이하면서부터 농경생활이 비롯되었으며 탐라왕국(耽羅王國)으로 발전하였다고 전한다.
특히, 이 세개의 지혈은 주위가 수백년된 고목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모든 나뭇가지들이 혈을 향하여 경배(敬拜)하듯이 신비한 자태를 취하고 있다. 또한 아무리 비가 많이 오거나 눈이 내려도 일년내내 고이거나 쌓이는 일이 없는 성혈로서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
조선(朝鮮) 중종(中宗) 21년(1526) 목사(牧使) 이수동(李壽童)이 처음 표단(標壇)과 홍문(紅門)을 세우고 담장을 쌓아 춘·추봉제(春·秋奉祭)를 하기 시작한 이래 역대 목사에 의하여 성역화 사업이 이루어졌고 현재에도 매년 춘ㆍ추대제(春·秋大祭)및 건시대제(乾始大祭)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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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인(三神人)이야기
겨울이어도 눈이 쌓이지 않는 곳 삼성혈의 세개의 구멍, 그 주변 다른 곳은 눈이 쌓이지만 유독 이곳만은 눈이 녹아 쌓이지 않으며, 더 신기한 것은 그 곳 주변의 나무들은 모두 이곳을 향해 머리를 숙이듯 자라난다는 것이다.
제주 시내에 위치한 ‘삼성혈’이라는 곳에 들어가보면 “品‘’자형의 세 개의 구멍이 나 있는 곳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제주의 개국신화가 시작되는 곳이니 그 전설을 살펴보자.
천지가 개벽하고 설문대가 제주 섬을 만들어 놓았으나 아직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느날, 한라산북쪽 땅속에서 고.양.부 라는 성을 가진 세명의 남자 신인이 홀연히 땅속에서 솟아올라왔다.
이들이 솟아나온 이 구멍을 모흥혈 이라고 하였다. (후에 세 성인이 나왔다 하여 지금의 삼성혈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이들은 가죽옷을 입고 사냥을 하며 생활을 하였는데, 후세를 잇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섬의 동쪽에(성산읍 온평리) 세 개의 자줏빛 함이 떠 내려오게 되었는데, 이를 열어보았더니 하나의 함에는 자줏빛 옷에 관대를 한 사자가 나왔고, 또하나의 함에는 푸른 옷을 입은 처녀 세사람, 또하나의 함에는 망아지, 송아지, 오곡의 종자가 나왔다. 세 신인은 목욕재계하고 처녀 세사람과 ‘혼인지’라 불리우는 연못가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신방을 차리게 되었다. 그후 세명의 신인은 활을 쏘아 서로의 땅을 정하여 살기 시작하였는데, 고을나가 사는 곳은 제1도(第一徒), 양을나가 사는 곳은 제2도 (第二徒),부을나가 사는 곳은 제3도(第三徒)라 하였다.
이로부터 오곡의 씨를 뿌리고 목축을 시작하였고 나날이 번성하여 인간의 세계를 이루어 놓았다. 이 고을나,양을나,부을나 세신인은 고씨,양씨,부씨의 시조가 되었다.
<관련 유적지>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지금도 제주시에 위치한 삼성혈에는 세계의 구멍이 남아있고 매년 제사를 지낸다. 또한, 남제주군 성산읍 온평리에는 이들이 세여인을 맞았다는 “황루알” 바닷가가 있는데 이 세 처녀를 실은 함이 도착하였다고 전해지는 황루알이라는 성산읍 온평리 바닷가에는 세 신인이 타던 말의 밥굽이라 전해지는 자국이 아직도 바위에 남아있다. 만조때는 잠기고 간조때는 드러나 보이는 이 평평한 바위위에는 동그란 홈이 말발굽 모양으로 패여 있다.
이곳에서 약20분정도 소용되는 거리에 세신인이 결혼식을 올렸다는 “혼인지”라는 연못이 있는데, 그 주변의 경관은 아름답고 평화롭기로 유명하다. 이 혼인지에서 300m정도 떨어진 곳에 혼인 후 며칠을 묵었다는 동굴이 있는데 이 동굴의 입구가 세 개로 나뉘어져 신비감을 더하며, 제주시내 동쪽에 위치한 화북동에는 세신인이 화살을 쏠때 맞췄다는 바위인 ‘삼사석’이 있다. 화살이 꽂였던 흔적이 바위에 아직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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